C9 Reapered: The Solution (Korean Version)
“이번 게임 어땠던 것 같아?”
이 한 마디만 던졌을 뿐인데 Cloud9의 선수들은 앞다퉈 입을 열며 선수들 스스로 게임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미드 라이너 Nicolaj “Jensen” Jensen 선수는 게임이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말이 없는 편인 정글러 Juan “Contractz” Garcia 선수도 게임 초반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상대 정글러가) 초반부터 나보다 경험치가 너무 앞서나가서 뒤처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며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죠.
저는 Cloud9 숙소에서 게임을 리뷰하는 곳인 거실에 앉아 있습니다. 다섯 명의 선수들이 연습실에서 바닥에 발을 끌며 걷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현재 시각은 게이머들에게는 아직 이른 시간인 목요일 오전, 오늘 예정된 첫 번째 스크림 경기가 방금 마무리되었죠.
Cloud9의 “Reapered” 복한규 감독은 오전 내내 같은 자리에 앉아 근처에 있는 대형 리뷰 모니터로 스크림 게임을 지켜보았고 지금은 차분히 선수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Cloud9의 팀 매니저, 분석가이자 통역사인 “Robin” 이승환 씨는 곁에 앉아 Reapered 감독이 하는 말을 통역하기 위해 대기 중이죠.
한국인인 주전 탑 라이너 “Impact” 정언영 선수가 한국말로 빠르게 자기 생각을 설명하면 유창하게 영어로 통역되어 영어를 사용하는 팀원에게 전달됩니다. 이 과정이 너무 매끄러워서 마치 하나의 언어로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영어를 구사하지 않는 스태프나 선수로 인한 애로 사항보다는 능력 있는 스태프나 선수가 가져다주는 이익이 훨씬 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승환 씨의 말에 따르면 통역이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통역 덕분에 더 정확하고 훨씬 빠르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죠. 그래서 선수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전 과정이 이렇게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토론은 계속되고, 팀 내 24세 ‘베테랑’인 원거리 딜러 Zach “Sneaky” Scuderi 선수가 논쟁을 벌이며, 게임을 다른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 논쟁에는 Sneaky 선수와 주로 Impact 선수 및 Jensen 선수가 참여해, 특정 상황에서 팀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는가를 놓고 몇 분 동안 대화가 계속됩니다. 최상급 선수들답게 대화는 물 흐르듯 이루어지죠.
Reapered 감독은 몇 분이고 게임을 볼 때처럼 조용히 집중하며 듣고만 있습니다. Reapered 감독이 입을 열자 긴장된 분위기가 순식간에 누그러집니다.
감독이 팀원과 함께 게임을 리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저는 Reapered 감독이 직접적으로 게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하며 게임 내 모든 미묘한 사항에 분석하고 뜯어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Reapered 감독은 “내 생각에 넌 이 부분만 보면 될 것 같아. 이 위치에선 상대가 세니까 인정하고 빼. 여기서 싸울 필요 없어”라고 말한 후 잠시 멈춥니다.
“내 말이 맞아?”
Reapered 감독의 말투는 신중하고 진지합니다. 게임 지식에 대한 자신감이 흘러넘칠 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아는 감독의 말투죠.
이승환 씨에게 Reapered 감독의 어조에 대해 묻자 Reapered 감독의 말을 통역할 때는 의도적으로 성량을 높인다고 합니다.
이승환 씨는 Reapered 감독을 가리키며 “더 권위 있고 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죠. 감독님이 하는 말이니까요”라고 말합니다.
Reapered 감독은 평범한 컴퓨터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조심스레 매 순간을 짚어가면서 팀원들을 대상으로 천천히, 그리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남은 게임을 리뷰하면서 흐름을 주도해갑니다.
Reapered 감독은 여러 방면에서 타고난 감독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 초창기에 슈퍼스타로 활약했던 Reapered 감독의 게임 지능은 탑 라이너로 활동하는 동안 언제나 칭송의 대상이었습니다. LCK 초대 챔피언인 MiG Blaze와 전설적인 팀 SK Telecom T1 창단 초기에 선수로서 활약했던 Reapered 감독은 몸담았던 모든 팀에서 주장 및 오더 담당으로서 이름을 날렸죠.
자기 자신이 없었다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거나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되었을 팀에서 유일한 진짜 스타 플레이어였던 Reapered 감독은 정식 코치진이나 분석가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창의적인 플레이와 팀원들을 세세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로팀이 라인 스왑에 익숙해지기 전에 Reapered 감독은 가장 복잡한 수준의 라인 스왑, 더블 라인 스왑을 지휘했고, 언제나 창의적인 플레이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죠.
Reapered 감독의 선수 경력은 인상적이긴 했지만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몇 번의 이적과 포지션 변경 후 2014년에 프로 선수 은퇴를 발표했죠. 이후 그의 전문성을 발휘해 한국의 방송 캐스터로 활동하다 LPL의 Edward Gaming에서 처음으로 코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코치 생활이 끝나고 Reapered 감독은 한국으로 귀국해 e스포츠에서 또 다른 기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NA LCS에 합류한 이후 최악의 포스트시즌을 보낸 Cloud9은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오랫동안 정체된 모습을 보였던 팀의 재정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Cloud9는 한국 전지훈련 기간 동안 재정비의 일환으로 새로운 코치를 물색했죠. 여러 후보를 검토했으며, Reapered 감독은 Cloud9과 단 하루를 보낸 후 팀에 감독으로 합류해 Cloud9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Reapered 감독이 Cloud9에게 준 첫인상은 단순했습니다. Reapered 감독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정확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죠. 프로 선수들은 게임에 대해 환히 꿰고 있기 때문에 게임에 대해 허튼소리를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간단한 게임 운영에 대해 틀린 발언을 하거나, 모든 변수를 완전히 고려하지 않고 한타 상황에 대해 비판하거나, 혹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대전 조합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면 프로 선수들은 단번에 알아채죠.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문제는 차치하고, 단순히 최고 수준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요구되는 게임 지식에 대한 기준치도 이미 너무 높습니다. 하지만 Cloud9에게 Reapered 감독은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이 수월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죠. 프로 선수들만큼 게임을 잘 이해하며 줄곧 현역으로 활동해왔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Cloud9의 숙소에서는 끊임없이 활동이 이어졌기 때문에 제가 거기에 있던 것이 팀에게 전혀 방해가 안 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왔다 갔다 하는 통에 Cloud9의 Jack Etienne구단주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죠.
스포츠 팬인 저희는 마치 LCS 경기를 보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스크림 경기를 지켜보면서 여느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를 볼 때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전세에 따라 흥분과 의기소침함을 오갔습니다.
저희가 스포츠 경기장의 관중 배경음 역할을 하는 동안 Reapered 감독은 평소처럼 조용히, 동요 없이 경기의 모든 세부사항을 머릿속으로 흡수하고 있었습니다.
Etienne 구단주에게 Reapered 감독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으니 한국 전지훈련 당시 이야기를 꺼내며 얼마나 많은 후보를 물색했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왜 Reapered 감독을 택했냐는 질문에는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참 많은 걸 시도해봤어요.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찾아와서 팀을 만나 보았죠. 아는 사람을 통해 Reapered 감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연습하고 있던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하루를 보냈어요.”
Etienne 구단주는 평소처럼 솔직하면서 장황하게, Cloud9이라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처럼 그 당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게임이 끝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비판과 분석을 쏟아 냈어요. 따로 기록해놓지 않았는데도 방금 플레이한 게임에서 있었던 모든 장면을 리플레이 재생하듯 짚어냈죠.”
Etienne 구단주가 Reapered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상기하며 그 당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 Etienne 구단주의 목소리에는 그 당시 자신이 느꼈던 놀라움이 배어 나옵니다.
“완벽한 리그 오브 레전드 천재라도 되는 듯 기억 속에 모든 시간대를 기록해놓고 모든 장면을 하나씩 설명했어요.”
Cloud9의 스크림을 불과 한나절 봤을 뿐인데 Reapered 감독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Reapered 감독에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것인 수준을 넘어 타고 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많은 경험으로 갈고 닦아온 것 같았죠. 감독이라면 전문가 수준의 게임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Reapered 감독이 그의 지식을 풀어놓는 방식이야말로 Etienne 구단주가 말하는 진정한 천재의 진면목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경력을 쌓아 온 저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어떤 시점이 되면 게임에 너무 몰입해 게임이 내 의식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Reapered 감독처럼 수월하거나 직관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해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게임을 진지하게만 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쾌활한 성격과 악의 없이 빈정대는 말투 때문에 Reapered 감독은 제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통해 만난 사람 중 대하기가 쉬운 편에 속하는 사람이죠.
Reapered 감독은 팀원들과 농담도 곧잘 주고받습니다. 유명한 Cloud9의 밈(meme) 문화를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팀원들과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지켜본 스크림 경기의 밴픽 과정에서 Reapered 감독은 연습실에 서서 챔피언 교차 선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적이 챔피언을 선택하는 동안 Reapered 감독은 Sneaky 선수와 같이 플레이하는 MMO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죠.
“네, 전 다 팔았어요. 감독님한테는 필요도 없는 거였고 값도 후하게 받았거든요.”
“나도 그 빌드 좋아. 세 보이던데.”
그 와중에서도 Reapered 감독은 게임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죠.
“여기서는 케이틀린 밴 해.”
많은 방면에서 Reapered 감독은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챔피언 선택 시 팀에게 지침을 주고, 게임과 여러 다른 상황을 검토하는 것을 돕고,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가감 없이 털어놓죠. 특히 팀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때는요. 그 기저에는 Reapered 감독이 각 팀원과 쌓아온 관계가 있습니다.
팀 코칭에서 두드러지는 요소인 챔피언 선택에 관해 물었을 때, 저는 Reapered 감독이 다른 팀처럼 챔피언 선택은 감독만의 책임이 아니라 팀이 함께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인상적인 것은 Reapered 감독이 밴픽 과정에서 팀원에게 부여하는 재량권이었습니다.
“Ray, 여기서 어떤 거 할 수 있어?”
“리븐요.”
“그래, 다른 건?”
“리븐 밖에 없어요.”
…
“그래, 리븐 픽해.”
저는 위 대화가 감독과 선수 간 실제 대화라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위 대화가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Cloud9과 Unicorns of Love 간 경기 당시의 대화라는 것이죠.
위의 대화가 보여주는 것은 Reapered 감독이 단순히 맹목적으로 선수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을 때는 선수와 그 선택지를 놓고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Reapered 감독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챔피언 선택 과정에서 이 문제로 다퉈서는 안 되겠죠.
“선수가 저한테 선택지를 하나만 주면 그걸로 가야죠. 그 선택지가 너무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안 될 이유는 없어요. 선수들을 믿으니까요. 하지만 선수가 특정 챔피언을 원한다고 했고 그 선택이 실패하면 그때 제가 따져 보는 거죠. 성공하기만 하면 뭘 선택하는지는 개의치 않아요. 제가 신경 쓰는 건 결과니까요.”
챔피언 선택이 끝나고 게임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 무대 위에서 챔피언 선택 중에 1레벨 전략이나 조합에 대해 조언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감독이 하리라 예상하는 일이죠.
“물론이죠”라고 Reapered 감독이 답했습니다.
하지만 웃으며 “이 게임은 스크림이니 될 대로 돼라죠”라고 덧붙였죠.
Reapered 감독은 영어는 잘하지 못하지만 필수 표현은 잘 익혀둔 것 같네요.
게임을 리뷰하는 것은 게임이 끝난 다음이기 때문에 진지해지는 건 그때 가서 하면 된다는 것을 Reapered 감독은 알고 있습니다. 연습을 온종일 하는데 언제나 심각하기만 하면 연습이 너무 고되겠죠. 그러니 농담을 던져 가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게임을 리뷰할 때도 Reapered 감독은 간단한 실수는 가볍게 지적합니다. 실수한 선수 자신도 자기가 실수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1레벨 봇 라인 싸움을 짚어볼 때 했던 다음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Reapered 감독이 “Smoothie!”라며 말을 꺼냈죠.
“이 스킬 왜 못 맞췄어? 큰 실수야!”
그 스킬은 라칸의 W스킬이었고, 물론 언제나처럼 Reapered 감독의 말이 맞았습니다.
“할배 피지컬 때문인가?”
팀원들이 돌아가며 익숙한 팀 유행어를 입에 올리자 저도 팀원들과 같이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죠.
Reapered 감독에 대해 진정으로 인상 깊은 점은 그의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따라오는 직감이었습니다.
Reapered 감독이 게임을 짚어가는 것은 프로 바둑 기사가 대국을 복기하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기본 사항들을 완벽히 이해하고 움직임을 하나하나 염두에 두면서도 게임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와중에도 역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의 성질을 간과하지 않죠.
이러한 자질은 수천 시간 연습을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Reapered 감독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지금까지 쌓은 전문성을 이용해 가장 작은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죠. 제가 Reapered 감독에게 방금 본 게임을 기억을 바탕으로 분 단위로 쪼개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Ray를 출전시킬 거예요.”
Ray 선수는 지난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Cloud9 숙소를 방문하고 며칠 후 NA LCS 스튜디오에서 위의 말을 들었을 때 Reapered 감독은 제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Reapered 감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죠.
“맞아요, 지난주에는 부진했지만 출전시키지 않는다면 선수로서 더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거예요. 한 주 잘 못했다고 다음 경기에서 벤치로 밀려난다면 누구라도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겠죠. 그래서 선발 출전시킬 거예요.”
Reapered 감독의 간단한 대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Reapered 감독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면 저 스스로는 절대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이었죠. 그 말을 듣자 머릿속 전구에 불이 켜지는 듯했습니다.
꽤 Reapered 감독다운 모습이었죠.
Reapered 감독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맥락 안에서 자신이 뜻한 바를 말하지만, 중요한 것을 말할 때는 언제나 선수의 현재 심적 상태를 염두에 두고 말합니다. 선수들이 정신 차려야겠다 싶으면 가차 없이, 그리고 정밀하게 지시를 내리죠.
하루의 첫 번째 게임에서 팀이 부진했다면 Reapered 감독은 별문제 삼지 않고 선수들에게 준비 운동한 셈 치라고 말하죠. Reapered 감독은 경기 매 순간의 잘잘못을 짚어낼 수 있지만 언제나 다음 게임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요점만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 주 경기가 있던 날, 팀이 Team EnVyUs에게 예상외의 패배를 당하자 Reapered 감독의 말투가 원래의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에서 승리를 스스로 내던진 팀의 좌절감이 깃든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날 곧바로 가차 없이 쓴소리가 날아들었습니다. 경기 중간 휴식 시간에 팀이 무대 뒤로 퇴장하기 전 팀 내 대화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 차려!”라는 말이 나왔던 게 기억나네요.
이승환 씨와 함께 다음 게임을 관전하기 위해 스튜디오 팀 연습실로 향하는 길에 이승환 씨는 “감독님이 저렇게 열 받은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라는 말로 회의를 간단히 요약해주었습니다.
Reapered 감독이 한국어로 말하긴 했지만 말투와 얼굴을 보면 어떤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굳이 통역해 줄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Reapered 감독이 팀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알 수 있었으며, 그것이 Reapered 감독의 말투에도 드러났죠. Reapered 감독은 게임 상황에 대해 말할 때 계속해서 ‘우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는 이 조합 상대할 땐 늘 겁을 먹어.”
“이 상황에선 우리가 운이 좀 안 좋았어.”
일곱 번째 선수로서 Reapered 감독의 개인적인 헌신은 무대 위에 서는 여섯 명의 선수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Reapered 감독에게 감독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죠. Reapered 감독은 열과 성을 다해 감독 일에 임합니다. 제가 Reapered 감독을 지켜보았던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팀이 꽤 어려운 스크림 경기를 소화한 후 Reapered 감독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였습니다.
“무대 뒤에서 너희가 이 챔피언 조합을 상대하는 걸 보고 있으면 걱정돼. 우리가 늘 이 조합 상대로는 애를 먹잖아.”
Reapered 감독은 비록 팀원들에게 자기 자신을 대입하지만, 경기 시작 전과 경기 중간 짧은 시간 동안만 선수들을 도울 수 있을 뿐, 결국에는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면 뒤에서 조언해 줄 코치진 없이 그때까지 배운 점을 바탕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Reapered 감독은 선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팀 환경을 구성하고자 했고, 그래서 Reapered 감독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단순히 팀에게 뭐가 좋고 나쁜지 말해주는 것보다는 팀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합 방식의 코칭이 Reapered 감독이 단지 똑똑한 분석가가 아닌 뛰어난 감독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Reapered 감독은 단순히 게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않고, 모든 스포츠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요소와 함께 ‘단순한’ 게임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죠.
Reapered 감독이 감독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에서(극히 일부의 눈에 띄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직 거의 개척되지 않는 분야에서 일궈낸 업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인상적인 일입니다. Reapered 감독이 LPL에서 코칭 경험이 있긴 했지만, 코칭 경력은 Reapered 감독이 의도적으로 개척하고 가다듬어 온 경력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된 일에 가까웠죠.
Reapered 감독에게 다른 코치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냐고 묻자 Reapered 감독은 웃으며 “아뇨, 한 번도 없어요. 다른 코치진이 뭘 하는지, 코칭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도 몰라요.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는 거죠. 그게 효과가 있는 것 같고요”라고 말했습니다.
Reapered 감독은 오히려 제게 이번 기사 취재차 다른 팀 숙소에도 방문할 예정인지 묻기도 했죠. 그럴 예정은 없지만 언젠가는 방문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Reapered 감독은 “(TSM의) Parth 감독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싶으니 저한테 꼭 말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내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나 봅니다. Reapered 감독이 웃으면서 경쟁자로부터 정보를 빼내려는 것은 아니라고 서둘러 해명했거든요.
“그냥 TSM의 스타일에 관심이 있어서요. 다른 코치진이 뭘 하는지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Reapered 감독은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게임에 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고 심지어 오만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Reapered 감독에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너무나 자연스럽고 수월한 일입니다.
제가 Reapered 감독의 탁월함을 알아보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플릿 시즌 최고 감독상(Coach of the Split)을 한 번 수상한 바 있는 Reapered 감독이 정확히 어떻게 코칭을 하는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Reapered 감독을 직접 보았을 땐 언제나 태평스러웠고 느긋했기 때문에 Reapered 감독의 진정한 자질을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Reapered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던질수록 Reapered 감독이 천재라는 느낌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갔죠.
Reapered 감독의 팀 재정비 작업과, Reapered 감독이 선수들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쏟아부었던 노력에 힘입어 Cloud9은 독특하고 균형 잡힌 팀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Reapered 감독은 팀에게 단순히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었지만, 팀원들이 서로 이야기하면서 해답을 발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이러한 팀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죠.
Reapered 감독에게는 올바른 해답을 도출하는 것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8월 19일 정오(태평양 표준시 기준)에 Cloud9은 Team Dignitas와 대결합니다. Reapered감독이 팀을 이끌어 준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